있겠죠. 그 민의 대의기구인 의회에서 이러한 도로명을 바꾸거나 확정을 할 때는 의회 의견을 참고로 해야 할 테니까. 있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예를 들어서 하나 말해볼까요. 지금 우리가 관통도로라고 합니다. 동서관통도로라고 명칭을 하고 지금 현재 군청 앞에서 터미널까지. 이것을 동서관통로라고 했어요. 그런데 도로명 주소에서 중앙로라고 했던가요. 이제 관통로라는 표현을 안 쓰는데, 지금도 주민들은 관통로라고 하지. 저부터도 수년을 그렇게 해왔으니까. 관통로라고 하지 중앙로라고는 표현을 않습니다. 다만, 표기를 할 때 우편물이라든가 이런 표기를 할 때 중앙로로 사용하고 있지만, 마치 이런 것이나 똑같습니다. 고창 모양성을 1964년도인가요. 정비를 했어요. 전국적으로. 그래서 읍성이라고 바꿨어요. 그런데 우리가 부르기는 읍성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모양성이라고 부르지. 이런 것들이 현실성이 떨어져 있다. 일제 때는 창시개명을 했어요. 성씨를 개명을 했는데, 해방 이후에 6.25전쟁이 끝나고 우리 그것을 명칭을 지리적표시라고 하던가 그런 이유로 해서 읍성이라고 바꿨어요. 그런데 저부터도 그래요. 모르겠습니다. 우리 3대, 4대 할아버지 때는 어떻게, 나는 그때는 모르겠으니까. 그런데 제 증조부도 모양성이라고 했고. 할아버지 때도 모양성이라고 했고 아버지 때도 모양성이라고 했고. 나 때도 모양성이라고 했고 내 자식 때도 모양성이라고 하고 있어요. 손자 때도 지금 모양성이라고 하고 있어요. 이런 불합리한 것들은 도로명에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은 사용을 해야 되지 않나, 조례로 제가 이것을 의원 발의로 할까도 했어요. 그런데 그냥 넘겨보고 있는데. 관통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관통도로라는 명칭을 거의 지금은 안 써요. 명칭을 다 부여해요. 특히 도로명 주소가 바뀌어지면서. 여기를 중앙로로 바꿨어요.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만약에 그때 당시에 이 관통도로를 개설을 안 했다고 한다면 고창읍내 도시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특히 도시계획도로는 자치단체 부담이란 말이에요. 그때 당시에 내무부때인데요. 유수택이라는 군수가 내무부에서 내려왔어요. 내무부에서 근무를 하다가 고창군수로 와서 상당한 힘이 있었죠. 내무부에 근무를 하다 군수로 내려왔으니까. 힘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때 이 도로를, 지금 군청 앞이 전부 집이었습니다. 조그마한 골목길로 이어지는, 큰 길이 없었어요. 골목, 골목길로 리어카 정도 겨우 들어가는, 연탄 배달은 할 수 있는, 그런데 그때 그 친구가 처음에는 농협 밑에, 농협 군지부 밑에 천변도로를 넓히려고도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그게 아니다. 이거 한번 잡자. 해서 지금 이 관통도로를 뚫었어요. 터미널까지 뚫었습니다. 그 밑에는 또 집이었어요. 그다음에 이제 이현택 장관이라는 총무처 장관이 계시면서 교부세 20억을 줘서 터미널에서 지금 우회도로까지를 뚫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때 유수택이라는 군수가 마인드가 없는 군수, 소위 한 1년짜리 군수에 불가한건데. 그때는 임명직 군수가 보통 1년 있습니다. 4년 동안에 6명이 바뀌어지니까. 보통, 우리 1대 때 4년 동안에 6명이 바뀌어졌어요. 그런데 그 짧은 기간에 관통도로를 뚫었어요. 이 엄청난 역사에요. 그래서 나는 그것이 항상 아쉬워서 여기를 수택로라고 하면 어떨까, 보통 선진국이나 유럽쪽은 개인의 이름을 명칭을 많이 사용합니다. 케네디로 이런, 그 도로를 개설한, 당시에 개설한 사람을 하기도 하죠. 그래서 수택로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지금 가지고 있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 도로명을. 바꾼다고 한다면.